요즘 일부 하이파이 애호가들을 보면 “스피커도 하나의 악기다”라는 말을 너무 쉽게 입에 올린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건 본질을 완전히 오해한 문장이다. 스피커는 음악을 연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재생하는 장치다. 만약 스피커를 악기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재현이 아니라 왜곡을 예찬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순간, 하이파이라는 개념 자체는 무너진다.
악기와 스피커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악기는 물리적 진동으로 새로운 소리를 창조한다. 현을 긁고, 리드를 진동시키고, 공명통이 울려 새로운 파형을 만들어낸다. 반면 스피커는 기껏해야 이미 존재하는 신호를 공기 진동으로 바꾸는 ‘변환기’일 뿐이다. 스피커가 자기만의 음색을 낸다는 건 자랑이 아니라, 입력 신호를 변질시키는 결함이다. 그 왜곡을 “악기의 개성”이라 부른다면, 왜곡된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이 더 아름다워졌다”고 말하는 셈이다.
“음악은 감성의 예술이니 기술적 정확도는 부차적이다”라는 주장도 자주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을 모르는 변명에 가깝다. 녹음실에서 엔지니어나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몇 시간씩 모니터를 교차 비교하며 라인 노이즈 1dB, 위상 편차 2도까지 신경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청자가 원래 의도된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그 모든 노력을 스피커라는 ‘악기’가 자기 멋대로 왜곡해 버린다면, 그것은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스피커의 색채를 미화하는 태도는 기술 발전을 거꾸로 되돌리는 퇴행적 낭만주의다. 진공관 앰프의 2차 배음, 알니코 유닛의 착색, 특정 캐비닛의 공진 등을 “음악적”이라고 부르며 마치 그것이 미덕인 양 떠받든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재생’이 아니라 ‘좋게 느껴지는 변형’일 뿐이다. 아무리 달콤하게 포장해도 사실은 ‘정확하지 않은 소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감성적 선택으로 즐기는 건 자유지만,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피커는 악기다”라는 철학적 미사여구를 동원하는 건 자기기만이다.
하이파이의 본질은 미학이 아니라 진실이다. 오디오는 예술을 재현하는 과학이며, 스피커는 그 과학의 마지막 인터페이스다. 스피커가 악기라면, 하이파이는 더 이상 ‘High Fidelity’가 아니다. Fidelity, 즉 충실도가 사라진 하이파이는 단순한 “음색 놀이”로 전락한다. 그건 오디오가 아니라 취향의 장식품이고, 그 위에 쌓인 수많은 기술적 노력 — 플랫한 주파수 응답, 시간축 정합, 위상 일관성, THD 최소화 — 모두가 허사가 된다.
하이파이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직시다. 스피커가 악기라는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낭만적 변명일 뿐이다. 음악의 진실은 스피커의 착색 뒤에 숨어 있지 않다. 그것은 오직 투명함, 정확함, 그리고 왜곡 없는 재현 속에만 존재한다. 스피커가 악기처럼 울릴수록, 당신이 듣는 건 음악이 아니라 스피커 자신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이파이의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