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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cymbals:k_zildjian_istanbul_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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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cymbals:k_zildjian_istanbul_history [2025/09/09] 정승환악기:cymbals:k_zildjian_istanbul_history [2025/09/09] (현재) 정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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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단독으로 용광로에서 만들어낸 합금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망치에 더 잘 견디고 부러지지 않으면서도 쉽게 모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깊고 무거운 징 소리 대신 교회 종소리보다 가볍고 맑은 ‘휘익’ 소리가 나는 심벌의 공식이 된 날이었습니다. 이 기술은 이후 가업으로 비밀리에 전해졌습니다. 이 특별한 합금의 품질은 널리 알려져 술탄에게까지 전해졌으며, 오스만 군악대 **메흐테란(Mehteran)**의 **소리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베디스의 작은 작업장은 당시 세계 최대 군대에 심벌을 납품하는 공장이 되었습니다. 메흐테란 군악대는 오직 아베디스 제작 심벌만 사용했으며, 그 명성은 제국 전역에 퍼졌습니다. 제국 내 종교 공동체와 음악가들의 종 필요성도 있어, 작업장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망치질과 불길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단독으로 용광로에서 만들어낸 합금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망치에 더 잘 견디고 부러지지 않으면서도 쉽게 모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깊고 무거운 징 소리 대신 교회 종소리보다 가볍고 맑은 ‘휘익’ 소리가 나는 심벌의 공식이 된 날이었습니다. 이 기술은 이후 가업으로 비밀리에 전해졌습니다. 이 특별한 합금의 품질은 널리 알려져 술탄에게까지 전해졌으며, 오스만 군악대 **메흐테란(Mehteran)**의 **소리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베디스의 작은 작업장은 당시 세계 최대 군대에 심벌을 납품하는 공장이 되었습니다. 메흐테란 군악대는 오직 아베디스 제작 심벌만 사용했으며, 그 명성은 제국 전역에 퍼졌습니다. 제국 내 종교 공동체와 음악가들의 종 필요성도 있어, 작업장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망치질과 불길이 이어졌습니다.
  
-1865년 아베디스가 사망하자, 동생 리틀 케로페(Little Kerope)가 사업을 이어받아 그의 심벌도 유럽의 악단과 오케스트라에 인기를 끌었습니다. 1927년 레본(Levon)과 디란(Diran)이 가족 사업을 이스탄불에서 운영했으나, 같은 해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사촌 아람 질시안(Aram Zilciyan)이 미국에 있는 친척에게 초청을 받고, 후계자가 없어 어려운 여정을 감행했습니다. 그동안 예디쿨레(Yedikule) 인근의 작업장에서는 미카엘 우스타(Mikael Usta)가 대장장이 큰 케로페(Kerope)의 명으로 ‘K’ 마크를 심벌에 찍으며 뛰어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작업장 인근 주민들이 망치 소음으로 고통받아 작업장은 바이람파샤(Bayrampasa)로 이전해야 했습니다.+1865년 아베디스가 사망하자, 동생 리틀 케로페(Little Kerope)가 사업을 이어받아 그의 심벌도 유럽의 악단과 오케스트라에 인기를 끌었습니다. 1927년 레본(Levon)과 디란(Diran)이 가족 사업을 이스탄불에서 운영했으나, 같은 해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사촌 아람 질시안(Aram Zilcyan)이 미국에 있는 친척에게 초청을 받고, 후계자가 없어 어려운 여정을 감행했습니다.((미국 A. Zildjian 심벌의 시작)) 그동안 예디쿨레(Yedikule) 인근의 작업장에서는 미카엘 우스타(Mikael Usta)가 대장장이 큰 케로페(Kerope)의 명으로 ‘K’ 마크를 심벌에 찍으며 뛰어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작업장 인근 주민들이 망치 소음으로 고통받아 작업장은 바이람파샤(Bayrampasa)로 이전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드러머들이 찾는 전설적인 ‘K. 질지안’ 심벌은 1977년까지 미국으로 주문되어 계속 출하되었습니다. 1978년 미카엘 우스타는 더 이상 심벌을 팔지 못했고, 수세기 만에 최초로 작업장의 망치 소리가 멈추고 불이 꺼졌습니다. 그는 마음 아파 공장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 뒤 마지막 거장 미카엘이 세상을 떠났고, 이스탄불에서는 더 이상 심벌 소리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3년 후, 미카엘 우스타의 경험 많은 조수와 소년 시절 친구 메흐메트 탐데게르(Mehmet Tamdeger)와 아곱 토무르추크(Agop Tomurcuk)가 비밀을 알고 작업장을 재개했습니다. 두 사람은 가족은 아니었지만 비밀을 공유하며 4세기간 이어져온 전통 심벌 제작을 이곳 고향 땅에서 부흥시켰습니다. 그들은 비밀 혼합물을 녹이고 사랑으로 망치를 내려 심벌에 7000년 전 전통 이름 ‘이스탄불’을 찍었습니다. 이 전통은 메흐메트 탐데게르와 아곶 우스타의 아들 아르만과 세르키스 토무르추크가 각각 ‘보스포러스’‘터키쉬’‘아나톨리아’라는 작업장에서 이어가고 있습니다.+오늘날 드러머들이 찾는 전설적인 ‘K. 질지안’ 심벌은 1977년까지 미국으로 주문되어 계속 출하되었습니다. 1978년 미카엘 우스타는 더 이상 심벌을 팔지 못했고, 수세기 만에 최초로 작업장의 망치 소리가 멈추고 불이 꺼졌습니다. 그는 마음 아파 공장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 뒤 마지막 거장 미카엘이 세상을 떠났고, 이스탄불에서는 더 이상 심벌 소리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3년 후, 미카엘 우스타의 경험 많은 조수와 소년 시절 친구 메흐메트 탐데게르(Mehmet Tamdeger)와 아곱 토무르추크(Agop Tomurcuk)가 비밀을 알고 작업장을 재개했습니다. 두 사람은 가족은 아니었지만 비밀을 공유하며 4세기간 이어져온 전통 심벌 제작을 이곳 고향 땅에서 부흥시켰습니다. 그들은 비밀 혼합물을 녹이고 사랑으로 망치를 내려 심벌에 7000년 전 전통 이름 **Istanbul**을 찍었습니다. 이 전통은 메흐메트와 아의 아들 아르만과 세르키스 토무르추크가 각각 **Bosphorus****Turkish****Anatolia**라는 작업장에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Istanbul**은 후에 **Istanbul agop**과 **Istanbul mehmet**으로 둘로 갈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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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cymbals/k_zildjian_istanbul_history.1757388168.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저자 정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