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느 레코딩 스튜디오를 가도 보컬 부스 한가운데에는 으레 엠블럼이 번쩍이는 노이만 U87이 걸려 있다. U47부터 이어진 유구한 계보 덕분에, U87은 오래전부터 사실상 보컬 마이크의 표준이자 무결점의 상징처럼 군림해 왔다. 공식적인 표준 규격이라 부를 수는 없어도, 수많은 가수가 이걸로 명반을 남겨온 만큼 이미 시장의 기준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녹음실들은 굳이 이 마이크를 현역으로 챙겨 쓴다. 일단 이 마이크를 전면에 세워두면 최소한 장비 문제는 아니라는 게 아주 명확해지니까. 결국 U87은 노래를 못하는 가수들이 그 허접한 가창력의 이유를 마이크 탓으로 돌리는 병신 같은 핑계들을 원천 차단하는 방패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돈 몇백만원을 주고 신품으로 박스를 까서 만나는 현대의 U87ai는, 냉정하게 말해서 과거 명성을 쌓아 올린 오리지널 빈티지 U87의 영혼을 완벽하게 계승한 마이크가 아니다. 엔지니어링의 정수가 담긴 명기라기보다는, 시대의 변화와 제조사의 영악한 상업적 계산이 만들어낸 스펙 뻥튀기형 타협점에 가깝다.
원래 컨덴서 마이크라는 물건의 음질과 성향은 80% 이상이 컨덴서 캡슐에서 결정된다. 회로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캡슐이 받아들이는 본질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6)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리지널 U87에서 U87ai로의 진화는 명백한 다운그레이드다.
오리지널 U87에 들어갔던 구형 K87 캡슐은 앞면과 뒷면의 백플레이트가 물리적·전기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각 지향성마다 완벽하게 독립된 대칭 구조를 갖춘 엔지니어링의 결정체였다. 센터 터미네이션에다가 듀얼캡슐 구조 때문에 당연히 제작 공정이 극도로 까다로웠고 불량률도 높아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노이만은 이 비용을 감당하는 대신 영악한 악수를 두었다. K87을 단종시키고, 이미 진공관 마이크 라인업에서 대량 생산 체계가 잡혀있던 K67 싱글 백플레이트 캡슐로 슬그머니 교체해 버린 것이다. 앞뒤 다이어프램이 하나의 백플레이트와 프레임을 공유하는 K67은, 노이만 입장에서는 제작 소요를 획기적으로 줄인 최고의 원가 절감형 카드였다.
이 캡슐 변경으로 인해 발생한 촌극을 가리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U87ai의 유일한 기술적 변화인 DC-DC 승압 회로다. 48V 팬텀 파워를 억지로 쥐어짜 60V 양전원으로 캡슐을 충전한 덕분에, 출력 감도(Sensitivity)는 무려 10dB나 껑충 뛰었고 자체 노이즈(Self-Noise)는 3dB 줄어들었다. 얼핏 보면 스펙 시트 상으로 대단한 기술적 진보를 이룬 것처럼 포장하기 딱 좋은 숫자가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이 항상 존재한다. 노이만은 스펙 시트의 숫자와 원가 절감을 위해 마이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매력들을 너무나도 쿨하게 제거해버렸다.
제한된 48V 팬텀 파워의 전력 중에서 상당 부분을 이 승압 회로를 구동하는 데서 가져가다 보니, 정작 소리를 받아주는 오디오 증폭 회로 자체의 헤드룸은 넝마가 됐다. 패드를 켜지 않은 상태에서 오리지널 U87이 127dBSPL의 폭발적인 성량도 부드럽게 받아내던 것에 반해, U87ai는 고작 117dBSPL만 들어와도 내부 회로가 비명을 지르며 클리핑을 일으킨다. 큰 성량의 보컬이 지를 때 느껴지는 그 특유의 까슬까슬하고 뾰족하게 깨지는 텍스처는, 기술적 비밀이 아니라 회로의 한계가 만든 미세한 디스토션일 뿐이다.
여기에 본래 K67 캡슐이 가진 태생적 거동이 결정적인 도화선 역할을 한다. U87 Ai에 탑재된 K67(K870) 캡슐은 본래 진공관 회로를 채택했던 U67 콘솔 마이크의 내부 디앰퍼시스(De-emphasis) 감쇄 회로를 통해 고역을 물리적으로 깎아 쓸 것을 전제로, 초고음역대를 일부러 약 4~6dB 이상 과도하게 부스트(Pre-emphasis)해 놓은 비선형적 아키텍처를 가지고 있었다. 구형 U87(i) 세대까지는 이 디앰퍼시스 보정 회로가 보수적이고 충실하게 작동하며 캡슐 고유의 날카로움을 정밀하게 제어해 주었으나, 이는 주파수 응답이 16kHz~18kHz 부근에서 조기에 롤오프(Roll-off)되는 마케팅적 약점을 낳았다.
90년대 디지털 레코딩 시대로 접어들며 AKG나 Blue 같은 경쟁사들이 '20kHz 초광대역 플랫 스펙'을 무기로 시장을 압박해 오자, 노이만 역시 카탈로그상의 수치적 열세를 극복해야 하는 공학적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따라 노이만은 U87Ai 공정에서 고역 감쇄를 담당하던 핵심 피드백 커패시터의 용량을 기존 C6(220pF)에서 C105(160pF)로 하향 조정하는 결단을 내린다. 커패시터 용량 감소를 통해 컷오프 주파수를 상향 시프트시킴으로써 마침내 스펙 시트상 '20Hz ~ 20kHz'라는 현대적 디지털 규격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 브레이크가 느슨해진 틈을 타 K67 캡슐 특유의 6kHz~10kHz 대역 프리앰퍼시스 성분까지 완벽히 감쇄되지 못한 채 출력단으로 여과 없이 밀려 나오게 된 것이다.7)
결국 U87 Ai의 본질은 아날로그 전설이라는 거대 브랜드가 직면했던 시대적 타협의 결과물이다. 캡슐 대량 양산의 안정성과 제조 단가는 극적으로 낮추고,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스펙 시트상의 보기 좋은 숫자'는 완벽하게 포장해 낸 철저한 상업적 승리의 산증인인 셈이다. 현대 엔지니어들이 U87Ai를 두고 “구형보다 소리가 날라다닌다.”고 평가하는 음향 공학적 민낯은, 바로 이 시장의 스펙 경쟁과 양산형 효율화가 맞물려 탄생한 양산화 개량의 씁쓸한 이면이다.
물론 수많은 녹음실에서 여전히 가수를 앉혀놓고 이 마이크를 들이밀 것이며, 가창력 판독기이자 방패막이로서의 표준 자리는 앞으로도 공고할 것이다. 다만, 그 쨍하고 날카로운 맨얼굴을 진공관 프리앰프의 소프트 리미팅으로 둥글게 다듬고 달래가며 레코딩 버튼을 누를 때마다 씁쓸한 확신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찬양하는 그 진짜 Neumann 사운드의 황금기는, 이미 아주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