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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는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겐 종교다.

[에세이] 결핍이 만든 숭배: '진짜'를 찾는 세대의 역설

현대 기술이 도달한 완벽함의 끝에서, 우리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다. 최신 사양의 기기들이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시장 한편에서는 필름 카메라와 LP, 빈티지 마이크 같은 과거의 유산들이 '진짜(Real)'라는 이름으로 추대받으며 기현상적인 인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그 아날로그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해 온 세대보다,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 세대가 이 '진짜'라는 감각에 더 집요하게 매달린다는 점이다.

아날로그 세대에게 과거의 기술은 '집착'의 대상이라기보다 '기억'의 대상이다. 그들에게 필름은 인화 전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었고, LP는 먼지와 스크래치에 취약한 관리의 대상이었으며, 빈티지 장비는 늘 수리가 필요한 번거로운 도구였다. 이미 그 불편함을 충분히 겪어본 이들에게 디지털의 등장은 해방이었고 축복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굳이 과거의 불편함으로 회귀하며 그것을 숭배할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 아날로그는 이미 충분히 만져보고 느껴본, 삶의 일부였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0과 1로 치환된 매끄러운 디지털 세계에서 자란 세대에게 아날로그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모든 것이 무한히 복제되고, 만질 수 없는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들은 본질적인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진짜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아날로그는 단순한 복고(Retro)가 아니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리얼리티'다. 화면 속 픽셀이 아닌 물리적인 은염 입자로 맺힌 사진, 스트리밍신호가 아닌 바늘의 마찰로 울리는 소리는 그들에게 낯설고도 강력한 실재감을 준다. 디지털 세대의 빈티지 집착은 어쩌면 경험해보지 못한 '물리적 실체'에 대한 일종의 결핍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현상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희소성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과 맞닿아 있다. 모두가 똑같은 디지털 결과물을 공유할 때, 아날로그의 불완전함을 선택하는 것은 “나는 만질 수 있는 진짜를 소유하고 있다”는 강력한 정체성의 표현이 된다.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의 효율을 누리는 동안, 디지털 세대는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가치'로 소비하며 자신들이 잃어버린 물리적 접점을 복원하려 애쓰는 것이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빠를수록, 그 속도감을 타지 못한 과거의 파편들은 '성능'이 아닌 '감각'의 영역에서 신화가 된다. 아날로그를 겪어본 이의 여유로운 시선과 겪어보지 못한 이의 절실한 집착 사이에서, 빈티지 기술은 오늘날 단순한 도구를 넘어 '진짜'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시대적 결핍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