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터 시장은 왜 생겨났는가?

디지털 레코딩과 DAW 시스템의 본격적 확산이 시작되던 1990년대, 컨버터 시장은 아날로그-디지털 변환 품질에 대한 현장의 불만과 기술혁신 욕구를 계기로 새롭게 태어났다.

초기의 프로툴스 시스템은 888과 같은 디지디자인의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는데, 이 장비의 아날로그 입출력 품질은 당시 기준에서도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바로 이 빈틈을 메우기 위해, 아포지 컨버터 AD8000이 등장했다. AD8000은 디지털 연결 방식으로 888에 연결되었고, 기존 888의 부족한 아날로그 입출력 음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었다. 스튜디오 엔지니어들은 이 변화를 즉각적으로 체감했고, 실제로 컨버터만 교체해도 “스피커 위에서 담요를 걷어낸 것 같다”는 극적인 반응이 나오곤 했다. 이런 효과는 Apogee의 기술적 선점과 차별성 덕분에 컨버터 시장의 초반 우위를 가져왔으며, 이후 여러 업체가 잇따라 진입했지만 한동안 압도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그림 1: digidesign 888

디지디자인 또한 아날로그 입출력 품질 개선을 위해 HD 인터페이스와 192 등의 장비를 출시하며 기술 격차를 좁혀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은 여전히 전문 컨버터를 통한 음질 향상을 선호했고, Pro Tools 시스템의 개방성과 호환성을 이용하여 Apogee, Burl, Antelope 등 다양한 브랜드의 컨버터를 병렬로 연결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었다. 이는 스튜디오 현장의 하드웨어 선택권이 확대되는 한편, 애초에 “믿고 쓸 수 있는 컨버터“에 대한 요구가 컨버터 시장을 견고하게 지탱하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초기 시절에는 디지디자인의 인터페이스 단독으로는 원하는 음질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에, 아포지 같은 외장 컨버터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극적인 소리 변화를 가져왔다. 실제로 AD8000을 스튜디오에 연결하면 즉각적인 감탄이 쏟아졌고, 입소문으로 ‘필수 장비’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컨버터들은 아날로그 입출력 부품, 설계와 성능 면에서 과거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 시장의 기술 평준화가 이뤄진 영향으로, 이제 컨버터와 내장 인터페이스 간의 음질 차이는 과거처럼 극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엔지니어들은 여전히 브랜드별 컨버터 특유의 캐릭터와 미세한 차이를 추구하고 있으며 ‘진짜 전문 컨버터’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결국 컨버터 시장의 생존과 지속적 성장에는 품질과 신뢰, 그리고 현장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